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2년 12월의 말씀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하

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어”(룻 1,6 참조 ; 루카7,16)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시고, 세우시고, 일으키시고, 돌보시고, 살리십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뵙기 위해 찾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참으로 놀랍고도 경탄스러운 방식으로 내려오십니다. 더 낮추어질 수 없는 죄인의 자리, 죽음의 자리에까지 이르시어 인간을 올려다보시며 이름을 부르십니다(루카 19,1-10 참조). “내가 오늘 너와 함께 묵으며 너의 묶인 사슬들을 풀어 주리라.” 멸망의 구렁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낮아지심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뵌 적이 없지만, 아버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십니다.”(요한 1,9.18). “하룻밤 묵고자 들어선 나그네”(예레 14,8)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먹고 입고 자라고 사랑하면서 함께 살고자 이 땅에 당신의 장막을 치셨습니다. “아기로 오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경배드리며 무릎을 꿇은 목자들을 올려다보십니다. 목자들의 얼굴에는 그분 얼굴의 빛이 새겨지고 목자들의 마음은 그분께로 스며듭니다. 하느님을 찬양, 찬미하고 돌아간(루카 2,20) 그들 일상의 시공간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밤낮 들에서 양 떼를 지키며 돌보는 그들 삶의 자리는 새로워졌습니다. 그들을 보는 이들은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의 평화와 기쁨과 생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오?” 천사들이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 둘레를 비춘 이야기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에 관하여 보고 들은 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무방비, 무장해제된 “아기의 얼굴”로 우리의 구원자가 탄생하셨습니다. 이 영광의 빛에 노출된 목자들은 한 마리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아 나설 것이며, 길에 쓰러진 낯선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사람에게 심판의 돌을 던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일어나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달려갑시다. 작고 낮고 가난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그분께 엎드려 경배드립시다. 사람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 바로 그 하느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가장 놀라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읍니다. 엄마가 아가의 숨소리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듯 그분께 가까이 다가갑시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그분의 숨결, 그분의 미소, 그분의 현존하심에 우리의 존재가 조율되도록 온전히 맡깁니다. 아가와 엄마가 서로를 어루만지듯, “아기로 오신 하느님”께서 딱딱하게 굳은 우리의 돌심장을 새롭게 만져 주시기를 청합시다. 전쟁, 폭력, 죽음에 대항하는 당신의 평화, 당신의 침묵을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새 생명을 주시어 우리도 당신과 함께 새로 태어나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에게로 움직이시는 그분께서 요구하십니다. “타자”를 향하여 움직이고 사랑으로 행동하기!

이제 막 해산하려는 여인을 상대로 그 옛날의 뱀, 뿔이 열 개 있는 큰 용이 싸움을 겁니다(묵시 12,1-6 참조). 대등하지 못하네요. 인간 역사의 모든 싸움이 그러하겠지요. 생명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태어납니다. 생명은 죽음 앞에서 스러지는 듯하나 주님께서는 위협받는 생명을 구하십니다. 여인은 아들을 낳고 광야로 달아납니다. 광야에는 생명의 샘이 있고 하느님의 보살핌, 하느님의 다정함(호세 2,16)이 있습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고 칼을 칼집에 넣고 휘황찬란한 인공의 빛을 떠나 광야로 탈출해야 합니다. 이기심과 애착의 언덕은 무너지고 불안의 골짜기는 메워집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앞에서 침묵하고 노래하고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먼 곳에서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예레 31,2-6 참조). 좋은 것은 도무지 나올 것 같지 않는(요한 1,46 참조) 나자렛의 땅에서 고요한 신비의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성모님의 응답은 메마른 기다림의 광야와 충만한 자비의 하늘을 잇는 사다리입니다. “정녕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는 새싹이 움트고, 우리 모두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매일 아침 드높이 찬미의 기도를 올립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끄소서.” 바로 오늘입니다. “당신 땅을 어여삐 여기는 주님,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영광이 이 땅을 가득 채우니, 이제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함께 있으리라.”

렘브란트 / 목동들의 경배(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