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2년 10월의 말씀

기쁨과 경배

리의 신앙은 시나이 산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약속의 땅을 상속받기 위해 떠나는 긴 여정에 대한 초대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신앙의 빛」). 잃고, 빼앗긴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건져 내시고자 하실 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너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탈출 3,12)이라고 하셨습니다. “시나이 산”이 목적이 아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바로 당신 자신을 주시고자 약속하신 그분께 참된 경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꿈입니다. “예배하는 인간! (Homo Adorans!)” 시편의 예언자도 마지막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숨쉬는 것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시편 150,6).

일생 동안 타고 다닌 말 못하는 짐승인 나귀가 입을 열어 말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나귀의 입을 열어 주시어, 발라암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그리고 발락이 동방에서 데려 온 그 발라암의 입에 당신 말씀을 넣어 주십니다.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신탁을 선포한 발라암은 일어나 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민수 22,1-24,25). 믿는 이들인 유다인에게는 예언의 소리가 주어졌지만 믿지 않았고, 믿지 않는 이들인 다른 민족들에게는 소리없는 표징이 주어지니 그들은 믿고, 기뻐하며, 경배를 드렸습니다. 일생 동안 자신의 지식과 능력과 지혜를 발휘하며 별을 관측하고 그 움직임의 질서가 세상의 법칙이라 여겼던 동방 박사들이 때가 되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이곳에 닿기까지 동방 박사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의심하고 뼈아프게 성찰하며 고뇌하였겠지요. 그들은 늘 바라보기만 했던 별을 따라나섰습니다. 숭배했던 것이 우상임을 깨닫고 그것을 끊어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발라암의 나귀처럼 별이 입을 열어 말을 했을까요? “바로 여기 그분이 계신다.” 복음서는 동방 박사들의 여정에 대해서 침묵하지만 그들의 놀랍고도 겸손한 태도를 세세하게 전합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이 순간 “점성술이 종말”을 고했다고 어느 교부는 말했습니다. 온 하늘의 빛들이 한 줄기 별빛 아래로 수렴되어 참 빛이신 그분을 드러내어 보여 주십니다. 창조주를 뵙는 영혼에게는 온 세상이 작아지나 봅니다.

헤로데도 놀랐지만 분명 동방 박사들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차이일까요? 헤로데는 자기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였고, 동방 박사들은 “자기 것”의 참 주인을 만나 자신의 전 존재를 돌려 드렸습니다. 이젠 별의 인도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의 꿈을 통하여 꿈 안에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아라.” 그들은 “다른 길 (Alles Hodu)”로 걸어갑니다. 헤로데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온 사람이 다시 헤로데에게 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찾아 행하는 이가 다시 악을 행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참한 인간”입니다(로마 7,24). 악이 항상 문 앞에 도사리고 있으니(창세 4,7) 끊임없이 그분 이름을 부르고, 그분 얼굴을 찾고, 갈망하고, 그분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며 자비에 의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러는 영문도 모른 채 소외를 겪을 수 있지만, 나병이라는 질병 때문에 소외, 즉 “다르게 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마저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소리를 질렀습니다(루카 17,11-19). 그런 그들을 보시고 한 말씀 하시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어땠을까요? 자신들의 몸에 일어난 놀라운 일을 보면서 태연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이 아이가 아버지께 그러하듯 기쁨의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꼭 안아주었겠지요. 가장 좋은 그리스도를 새 옷으로 입게 되었습니다. 그를 “외국인 (Allo-Genes)”이라고 하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림받았던 이가 자신에게 행한 주님 일에 대하여 감사와 찬양을 바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하신 성모님께서는 기쁨의 샘이시며, 하느님 경배의 학교입니다. 그리움이 채색되는 10월, 경탄과 감사, 기쁨과 경배를 그리워하며 그것들을 되찾아 행할 수 있도록 성모님과 함께 온 마음으로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에기노 바이너트 / 보호 망토의 성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