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2년 9월의 말씀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하느님께서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고 확언하십니다. 구약 성경의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일까요? 이 구절만 따로 떼어 놓으니 선뜻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읽는 짙고 어둡고 무거운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의 시작입니다(이사 52,13-53,12).

온 우주와 함께 하느님께서는 침묵으로 숨으시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지는 그 순간, 인간의 미움과 증오를 사랑으로 갚아 주시고자 하느님께서는 백인 대장의 입을 통하여 선언하십니다.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루카 23,47). 비록 이방인 한 사람의 고백일지라도 인간의 무지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온 인류의 기도이며 찬양입니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하였지요.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만약 내가 한 생명의 아픔을 덜어 주고 그 고통을 달래 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하늘도 땅도 담을 수 없는 당신의 무한하신 마음은 이 작은 영혼만이 전부인 양 차지하셨습니다. 사람이 되시어 땅에 당신 장막을 치신 하느님, 당신의 지상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 당신께서는 폭력과 저주와 죄악으로부터 승리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얼굴 없는 그 종은 우리에게 자화상을 드러내어 보여 주십니다. “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행복합니다. 아버지의 것이 모두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것은 내 작은 양들의 것입니다. 나는 슬픕니다. 그러나 행복합니다. 슬픈 이들과 함께 내 아버지의 위로와 기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목마릅니다. 그러나 행복합니다.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내게로 와서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물을 마실 것입니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자화상은 십자 나무에 걸렸습니다.

온통 어둠뿐이고, 하느님은 찾을 수도 부를 수도 없고 무서움이 밀려올 때면, 홀로 스스로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깨어있게 해 달라고 청하며 무릎을 꿇고 기도합시다. 혼자가 아닙니다. 내 앞에는 나와 똑같이 그렇게 기도하시는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아빠, 아버지!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자코모 만추(Giacome Manzu) / 바티칸 죽음의 문 일부, 196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