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2년 7월의 말씀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다오.

“줄

스”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고양이 줄스는 “온 세상을 다 안아 주면 더 좋은 세상이 될까?”라는 기특한 희망을 품고 길을 떠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새와 물고기와 꽃들을 안아 주지요. 낯선 땅에 입을 맞추고, 306번째 안아 줄 친구 후무후무 물고기를 만난 후에는 북극으로 갔습니다. 오직 차갑고 두꺼운 얼음뿐인 그곳은 텅 비어있네요. 갑자기 춥고 외로워 막 울음이 터지려고 하는데 “나 좀 안아 줄래?”라며 북극의 곰이 다가옵니다. 줄스보다 무지무지하게 큰 곰입니다. 그림책의 다음 장을 펼치니 북극곰이 작은 줄스를 가슴에 폭 끌어안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넓은 북극을 아름답게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세상을 안아 주고자 길을 떠났던 작은 줄스가 오히려 안겨있네요. 그렇군요. “고마워요, 줄스! 우리가 온 세상을 지금 안아 주면 더 좋은 세상이 된단다.” 그분께서 우리의 작은 사랑과 희망 안에서 큰일을 하셨습니다.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소리가 하느님께 올라갔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살펴보시고 그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탈출 2,23-25 참조). “하느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은 까맣게 잊었던 것을 불현듯 생각에 떠올린 것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이제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신다는 것이지요. 당신 친히 땅으로 “방문하시어” 당신의 협력자를 찾으십니다. “물에서 건져 냈다”(탈출 2,10) 라는 이름을 지닌 모세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어떻게 당신을 드러내시는가요? 금세 타서 없어지는 “덤불”(신명 33,16) 같은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탈출 3,2) “모세야, 모세야!” 이름을 부르십니다. “물에서 건져 내어진” 모세, 즉 건짐 받은 이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자기 백성을 건져 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더러는 잡초일 뿐이고, 더러는 말씀의 뿌리를 성장시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시덤불”(마태 13,22) 같은 나에게 다가오시고, 나와 함께, 내 안에 머무르시면서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안아 주고, 받아들이고, 건져 주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아무 조건없이 내어 주십니다. 더구나 우리의 죄와 병고를 짊어지십니다. 나날의 작은 죽음들인 질병, 늙어가는 일,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무력감, 버림받음, 물리적인 고독과 소외 등을 함께 겪으십니다. 그 어떤 몹쓸 경우에도 우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으시고”(요한 14,18) 우리 곁으로 다가오십니다. 정녕 가까이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분께서 땅으로 오신 것은 단지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고, 멸망 당할(요한 3,16 참조) 우리를 구하시기 위함일까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품위를 당신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가야 할 그 길을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루카 10,25-37 참조). 복음은 비유에 나오는 세 사람에 대해 “그를 보고서는,” 이라고 보도합니다. 길을 내려가다가 “똑같이” 누군가를 분명 보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멈춘 쉼표(,) 이후에 그들은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사제와 레위는 “쉼표” 즉 “일단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멈추었기에 자기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는 마치 모세가 “놀라운 광경을 보고 경이로운 마음으로 다가가듯” 멈추고 가까이 다가갑니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 나보다 더 내 안에 가까이 계시는 그분의 마음이 자신을 움직이도록 허용한 것이지요. 우리는 사마리아인이 돌본 “강도 맞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자비로이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이웃이 되어 주어라.” 그들 세 사람은 “주님, 저희가 언제 …… ?”(마태 25,31-46 참조) 라고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선택이 달랐듯이 그들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차없이 심판하십니다. “너는 나를 피해 달아났고, 너는 나를 돌보아주었다.” 나보다 더 나에게 가까이 계시는 분께서는 속삭이는 다정함으로 말씀하십니다. “멈추고, 내 마음을 알아다오.” 멀리 계시는 분께서는 고통받는 타자 안에서 호소하십니다.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다오!”

Gerrit Dou (1613-1675) / 성경을 읽고 있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