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12월의 말씀

당신은
그를 보았습니다.

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이들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영원에서부터 “한 아기”는 가장 가까운 하느님 품 안에 계셨고, 세상을 만드실 적에도 함께 곁에 계셨으니 그분이 하시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을 다 아십니다.

한처음,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당신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동산을 일구고 돌보도록 파견하셨습니다. 창조는 여전히 새롭게 계속됩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던(요한 8,58) “한 아기”, 그 구원자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고 멈추십니다. 죄가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분의 일”을 그에게서 드러내십니다(요한 9,1-41). 당신 침으로 땅의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신 다음 “가서 씻어라.” 명하시며 “실로암” 못으로 보내십니다. 눈먼 사람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파견된 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아기가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지듯이(루카 2,40) 눈뜬 이는 차츰차츰 진리의 빛 속으로 의연히 걸어갑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하느님의 일”에 대해 “잠잠히 있을 수가 없는”(이사 62,1) 것이지요. 베드로조차도 “나는 아니오.”라고 발뺌했건만, 자신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이웃들에게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Ego Eimi)라고 당당하게 밝힙니다. “나다.”(요한 6,20) 예수님께서 당신을 증언하셨듯이 그도 자신에 관해 증언합니다. “그분은 예언자이시고, 이제는 제가 보게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볼 수 있으나 그는 아직 “그분”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라는 철벽을 쌓은 채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 앞에서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라며 홀로 담대하게 맞섭니다. 눈을 뜨고 본다는 현재를 무시하고 오직 눈이 멀었던 과거에만 집착하는 그들에게 일침을 날립니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놀라움과 감탄을 모르는 “눈먼 이들”은 “보는 이”를 시나고게에서 파문시켜 버렸습니다. 정말 통탄할 일이네요.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말씀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밖으로 내쫓겨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세상의 빛”을 얻습니다. 드디어, 자신을 보셨던 예수님을 그가 봅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보아야 할 얼굴을 보니 온몸은 밝아지고 그의 아름다운 신앙 고백이 완성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먼저 찾으시고, 먼저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포대기에 싸여 아기”로 오셨습니다. 몸짓과 울음 외에는 자신의 필요와 요구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얼굴, 소외되고 외면당하며 끝내는 잊혀질 수도 있는 소수자의 얼굴, 바로 이 “아기의 얼굴”들이 우리를 구원으로 끌어 당깁니다. 진리시여, 빛이시여! 제 안에 당신 얼굴의 빛을 비추어 주시어 당신 빛으로 빛을 보고, 당신의 얼굴들 앞에 있는 제 얼굴과 제 얼굴을 바라보시는 당신 얼굴을 우러러보며 경배드리게 하여 주소서.

Bicci Di Lorenzo (1373-1452) <성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