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9월의 말씀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산

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시 121). 재난과 재앙, 그 고통 앞에서 다시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릅니다. 당신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마태 5,45) 참으로 자비로운 분이심을 압니다. 당신의 완벽한 공평! 불바다, 물폭탄, 코로나 팬데믹은 악인과 선인을 골라서 덮치지 않는군요. 하지만 철저한 불공평이십니다. 이 재앙들과 재해는 가난한 이들과 오갈 데 없는 난민들에게는 고스란히 마지막 남은 한 닢의 희망마저 요구하시면서, 복구와 개발을 앞세우며 경제 논리로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의 마음과 정신에는 아직도 아무런 울림이 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주님, 오직 당신께만 신뢰를 두는 이들의 가난한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이제 그만 “당신께 어울리지 않는”(창세 18,25) 재앙을 거두어 주소서. 세상과 인간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기억하시고 완고한 인간의 마음을 돌이켜주소서.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기후 위기를 알리고 있는 “어머니 지구”를 살리기 위해, 저희는 “마귀 들린 딸을 살린 가나안 부인”(마태 15,21-28)과 함께 더욱 굳건한 믿음의 기도로 동참합니다. 제자들의 만류와 예수님의 매정한 거절도 딸을 살리고자 하는 어머니의 절박함을 막지는 못했지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다는 예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과 이방의 장벽을 부수십니다. 바로 그 주님께 “어머니 지구”를 살려 주시기를 그 “가나안 어미”의 심정으로 간곡히 청하며 매달립니다. 주님께서도 병든 어머니 지구를 마귀의 손에 버려두는 무심한 저희를 야단치실 것입니다. 그 어떤 모욕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파하며 부서지는 어머니 지구를 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개발 악령의 손아귀에서, 파괴자들의 손에서 지구를 살려주십시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는 우리 주님의 기쁨 가득한 생생한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당신 예언자들의 소리와 선한 이들의 행동이 멈추지 않기를!

모든 피조물도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성령께는 어둠도 혼돈도 두렵지 않습니다. 성령은 꼴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어둠만이 덮인 땅 위를 감돌며(창세 1,2) 하느님 창조의 말씀을 기다리시는 인내의 영이십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이신 분께서 “목마르다. 다 이루어졌다.” 하시며 그 영을 우리에게도 넘겨 주셨습니다(요한 19,30).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멸시받고 배척당한 고통의 얼굴”(이사 53장)입니다. 그 얼굴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십자가 아래까지 따른 이들에게 당신께서는 영을 넘겨 주셨지요. 평화와 생명의 영이십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는 어떤 것에도 절망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며 자연과 화해하고 용서 청하며 어머니 지구를 구하고자 온 힘을 모으면 좋겠습니다. “나거나 들거나 모든 악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 당신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조르즈 루오 <십자가의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