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6월의 말씀

마음이 마음에게

연은 무심한 듯, 도도한 듯! 머위꽃, 민들레, 제비꽃들이 길섶과 틈새마다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비 내리고 그치면 마치 출발선에서 신호를 듣고 달리는 마라토너들처럼 죽순은 순식간에 동시 다발로 땅을 뚫고 불쑥 올라오는 그 봄도 지났습니다. 봉쇄 울타리 안에서도 “접속”이 “접촉”의 자리를 대신한 낯섦의 현실을 직간접으로 만납니다. 어깨를 토닥이고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며 음식을 먹고, 함께 기도하고 서로 평화 인사를 나누던 평범한 매일 매일의 일상이 너무나 소중한 축복이며 기쁨이고 선물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감사드리며, 온 정성과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여, 텅 빈 외부 성당을 사랑의 기도로 채웁니다. 가득 찬 사랑이 넘치고 흘러 벗들과 이웃의 마음에 가닿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지혜 11). 그러나 우리는, 나에게 필요한 것만을 욕망하고 모방하고 거듭 욕망합니다. 정작 우리를 필요로 하는 “강도 맞아 초주검된”(루카 10) 이웃은 외면하며 딴 길로 피하거나 혐오하며 밀어냅니다. 경계를 지켜야 할 다른 피조물에게는 폭력을 숨긴 채 다가갔습니다. 용서를 청하오니, 저희 걸음을 되돌리게 하여 주소서.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존속할 수 있었으며 당신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무엇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겠습니까?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기에 당신께서는 모두 소중히 여기십니다.”(지혜 11장). 사랑이시며 의지이신 성령이시여, 저희 눈을 밝혀 주시어 당신 마음을 알게 하여 주시고, 당신 뜻을 행하는 도구로 써 주소서. “광야”(호세 2,16)로 불러내시어 다정하게 들려주신 그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하여 주소서.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미카 6,8).

“지금은 없고 멸망을 향하여 나아가는”(묵시 17,8) 헛된 자본과 권력의 우상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당신께로 돌아서기를”(사도 14,15) 지극하신 인내와 눈물로 호소하십니다. 하느님의 마음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흔들어 깨우십니다. “라자로야”(요한 11,43). “마리아야”(요한 20,16). 죽음과도 같은 어둠과 “내 뜻”의 애착에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생명, 빛, 진리에 함께 머물자고 초대하십니다. 새벽의 어둠을 밝히는 별을 보아요. 꽃과 함께 춤추는 나비의 날갯짓 소리를 들어보아요. 무관심했던 이웃의 얼굴과 손을 보아요. 주님의 소리이고 주님의 얼굴이지요. 참 주인이시고 아름다운 목자이시며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시고, 생명을 얻고 또 얻는 푸른 풀밭으로 이끄십니다. 당신 친히 앞장서 가십니다. “주님 불멸의 영이 만물 안에 들어 있으니, 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단화 부분 <세례자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