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12월의 말씀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

 

출 길 없는 갈망, 깊은 그리움으로 찾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는 있습니다. 아픈 이들은 건강을, 약한 이들은 용기를, 가난한 이들은 부를, 어둠에 갇힌 이들은 빛을 기다리며 찾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영원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무엇”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큰 다른 갈망과 필요가 생깁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야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습니다. 오직 당신 만드신 세상과 사람에 대한 끝없는 사랑 때문에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로 오셨습니다. 요셉에게는 주님의 천사가 “꿈”에 알려 줍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움직이면서 아기 예수님을 뵙고 경배하였습니다. 들에 사는 목동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달려가 평화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세상의 권력 앞에서는 무력해 보이고, 세상의 풍요 앞에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아기”가 되신 하느님의 길은 이 세상에 참 평화와 사랑을 가져 오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 구원을 위하여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을 과연 어디서 어떻게 알아 뵙고 희망과 기쁨을 얻고 있는지요.

례자 요한은 수백년 전에 부르짖었던 예언자 이사야의 소리를 자기 영혼 안에서 들었습니다. 그 응답으로 자신과 오시는 주님에 대해 아름답고 겸손한 증언을 합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그런데 불가능이 없으시고 무한히 크신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서 먼저 그렇게 작아지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엄청나고 놀라운 일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하늘보다 크고 높으신 하느님께서 작아지고 낮아지시어 우리 안에 들어 오셨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이루실 수 있는 분께서 마리아의 응답(Fiat)을 듣고서야 “큰일”을 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목숨마저 잃게 되는 터무니없는 지점에서 마리아께서는 순종한 것입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굽어보시는 하느님께 영혼을 통째로 맡긴 것이지요.

란하여 현혹시키는 온갖 불빛과 소리 속에서 어떻게 천사의 음성을 듣고 별을 보며 믿음의 길을 따를 수 있을까요. 영혼을 깨울 사랑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로 세상에 오신 그분,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에서 “지극히 작은 사람들” 안에 숨어계십니다. 가장 작은 이들을 돌보고 만지며, 주님을 만질 수 있어야 합니다. 거저 받는 은총의 초대입니다. 영혼을 꿰찔리는 고통을 허락하신 어머니 성모님과 함께 성탄의 축복과 믿음의 복됨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게르트겐 토트 신트 얀스, 구세주의 탄생, 1490년경, 런던국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