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10월의 말씀

 

다가가 멈추고, 돌봄

머니 성모님께서 매듭을 풀고 계십니다. 한 천사가 얽히고 묶이고 뒤섞인 매듭을 성모님께 올려 드리고, 성모님께서는 온갖 자애와 지혜의 손길로 그것을 곱게 풀고 펼치어 다른 천사를 통하여 내려 주십니다.

정 수도원 미사에 피조물인 새들도 찾아옵니다. 내려온 하느님의 선물과 축복에 대해 사제가 “저희도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한 목소리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나이다.”라고 기도하고 다함께 환호를 올릴 때 새들도 고양되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 높은 데서 호산나!”라는 천사의 찬미 노래는 우리와 새들의 목소리와 합하여져 성전을 가득 채웁니다. ‘천사? 때마침 새들이 요란하게 울었겠지.’라고 생각하시나요? 허나, 눈맑은 이는 천사 날개자락의 빛도 보았답니다.

수한 영인 천사”의 존재를 부정하고 날개 달린 천사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천사의 현존을 체험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살펴봅시다.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힘들어 하는 이, 절뚝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이,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 소외된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곁으로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나의 손을 내밀고, 기댈 어깨를 내어 주고, 그들의 소외와 고통을 마음에 담아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라고 말을 건네어 봅시다. 신비롭게도, 바로 내 곁에 내 가까이 “나의 천사”가 늘 함께 있었던 기억이 투명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만일 천사가 나에게 머물지 않았다면, 만일 내가 그때 그 천사의 보호와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되살아 솟아오르는 이 사랑과 감사의 벅찬 기쁨은 우리 모두를 다시 다른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되도록 재촉할 것입니다. 우리 사부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는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천사는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보호하기 위해 현존합니다. 그들의 현존과 보살핌에 대해 공경과 신뢰심을 품어야 합니다.”

절과 절망의 순간에 우리 나약함의 벽은 자존심, 비겁함 때문에 두껍고 강합니다. 어머니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며 인내로이 약함에 주저앉아 기다리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저것 섣부르게 찾아 헤매다 보면 헛된 우상에 빠지는 더 큰 위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무력하게 견딘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뚫고 천사를 보내십니다. “일어나 먹어라.”(1열왕 19,5). 천사는 두려움에 갇힌 우리를 흔들어 깨우며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하시고 빵과 물을 주십니다. 다시 일어나 사랑의 산으로 향할 때까지.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 1700 / 독일 성 베드로 암펠트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