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8월의 말씀

 

어머니

 

머니”라고 부를 때 어느 자식이라도 가슴을 훑으며 올라오는 마음 저미는 그리운 정에 울먹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목마른 이가 마시는 샘물,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손길, 백척의 간두에서 한 발짝 내딛어 뛰어오르게 하는 고결한 침묵의 채찍입니다. “얘야,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2마카 7장 참조).

리 시토회 사부, 꿀 박사라 불리는 교회학자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수도원에 입회하였다고 합니다. 비록 봉쇄 광야에서의 숨은 삶을 선택하였으나 세상의 필요와 교회의 요청에 응하기 위해 외출을 해야 했던 그는 수도원으로 돌아오면 자식이 어머니에게 그러하듯 언제나 먼저 성모님께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얘야”라고 부르신 어머니 성모님은 아들을 대하듯 손으로 성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받으셨다는 감미로운 전승이 있습니다. 성모님을 공경하는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였던지 성모님은 천사를 데리고 성인에게 자주 발현하셨다고 합니다. 그림을 보면, 수도승의 일과인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하면서 성경을 필사하고 있는 성인에게 나타나신 성모님은 그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대견하게 바라보십니다. 당신 마음에 품어 간직한 기쁨과 생명 충만한 말씀을 투명하게 펼쳐 보이시고, 성인도 겸손한 마음과 눈으로 귀 기울이며 성모님의 아름다움에 취한 듯합니다. 우리도 하루 중 어느 시간이라도 어머니와 마주보며 그분의 눈동자 안에서 “나”를 보고,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말씀 안에 머물고 말씀에 응답(Fiat)할 수 있기를…. 성 베르나르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정 수도원 제대 벽면에는 성모님이 서 계시고 품 안에는 아기 예수님께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어머니의 두 손을 발판삼아 서 계십니다. 마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라고 말씀하시는 “아가 예수성심상”이라고나 할까요. 보면 볼수록 성모님은 아들 예수님을 꼭 닮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반나절 동안 사과를 만지며 일했다면 나머지 반나절 동안 사과 향기를 풍기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니 아홉 달 동안 머물렀던 태중에 사랑의 힘과 부드러움이 얼마나 위대한 영향을 미치겠는가?”(성 베르나르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와 영을 지닌 성모님은 늘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발현이나 환시가 아니라 일상의 한가운데에 오십니다. 우리 손을 잡아 주시면 절망적인 낭패를 당하더라도 하느님의 연민을 잃어버리거나 잊지 않으며, 비록 여전히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조각난 일상을 살 수 밖에 없을지라도 우리는 영원으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지상에서의 그 영원은 바로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아래”입니다. 그곳까지 우리 혼자서는 결코 갈 수 없으나 성모님과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느님께 받은 선물인 “오늘”은 끝기도 후 성모찬가(Salve Regina)를 부르며 다시 돌려드립니다. 성당불은 모두 꺼지고 성모님 홀로 빛이신 아기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십니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귀양살이 끝날 그 때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를 뵙게 하소서. 오,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성 베르나르도에게 나타나신 성모님> Filippino Lippi,1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