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7월의 말씀

 

사랑하고 일하라

 

“수

도원에서 저녁, 아침, 낮에 바치는 시간경 기도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저를 도우소서.”라고 시작합니다. “주님, 어서 빨리 오시어 저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짧은 기도는 때로는 한숨처럼 때로는 애원과 절규가 되어 작업장에서도 터져 나옵니다. “정해진 시간에 육체노동”을 하고, “자신의 손으로 노동함으로써 생활할 때 비로소 참다운 수도승이 되어”간다고 성 베네딕도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유기농 잼”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기쁨과 보람도 있지만 낭패와 예상 못한 어려움들을 경험하며 마음마저 부서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사랑의 빚”은 자꾸만 늘어나고 있으니 우리의 모든 일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것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노동이 “길을 잃지 않고 아버지 하느님 집에 이르는” 순례의 이정표임을 믿습니다.

밀알이 바수어지고 다른 재료들과 섞여, 달구어진 오븐에 구워질 때 쿠키가 되어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줍니다. 녹는 온도, 향이 서로 다른 12여종의 식물성 오일들을 혼합하여 저온에서 녹이고 보온한 후 40일 이상을 숙성시키면 참 좋은 세안용 비누가 됩니다. 완성된 비누는 다시 물에 녹아 거품으로 사라지면서 때를 깨끗이 없애 줍니다. 잼, 쿠키, 비누, 카드, 양초 등 우리 손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은 마치 땅에 묻힌 씨가 밤낮이 가는 가운데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처럼 놀랍고도 신비롭습니다. 은밀하며 조용한 사랑의 혁명! 비누처럼, 양초처럼, 서로 씻어주고 어둠을 밝혀주는 주님 손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빚진 사랑”을 조금씩 조금씩 갚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히즈키야는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였지만 주님께서는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이사 38,1-8 참조).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것은 공로나 업적이 아니라 눈물입니다. “비움”의 아름다움인가요. 허나, 눈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몹시 슬퍼했기 때문도 아니고 죄를 뉘우치며 용서를 청한 때문도 아니며, 자신의 비참을 관상하며 겸손을 드러냈기 때문도 아닌, 다만 깊이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여인(루카 7,36-50 참조)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도하고 일하는 수도승, 주님의 제자로 사는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대야”(요한 13,5)와 같은 존재입니다. 또한 흘러넘치며 마르지 않는 주님 사랑을 세상 이웃을 향하여 고스란히 옮겨주어야 하는 “물길”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예수님 친히 모범을 보여 주신 계명을 살아내는 “사랑의 일”이 수도승이며 제자임을 확인시켜 주는 우리의 지문指紋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