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6월의 말씀

 

베드로는 울었다

 

“우

리는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 기뻐서, 슬퍼서, 억울하고 분해서, 부끄러워서 …… – 울게 됩니다. 울음 때문에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다가 울기도 합니다. 성 베네딕도는 규칙서에서 “지난 날의 자기 잘못을 눈물과 탄식으로 매일 기도 중에 하느님께 고백”하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보석을 감정하듯 눈물을 감정한다면 어떤 눈물 방울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울까요? 무슨 사연들이 있어 눈물을 흘리게 될지라도, 우는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고 함께 우시는 우리 주님의 눈물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라며 주님을 배신했던 그 밤, 베드로는 “슬피 울며” 주저앉았습니다. 차라리 땅이 입을 벌려 자신을 삼켜 버린다면 치욕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련만. 그러나 하느님의 크시고 놀라우신 자비는 이러한 “세상의 슬픔”(2코린 7,10)에 매몰되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세 번째 배신의 말이 베드로의 입에서 채 끝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는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시며” 당신 눈물의 씨를 베드로 마음 땅에 뿌리셨습니다. 그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여, 기억하고 일어나십시오. 그대를 바라보시던 자비의 눈길, 높은 산에서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시며 어루만져주시던 그 손길을 다시 느끼십시오. 그대의 배신, 실패, 좌절에 대한 아픈 기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1베드 3,15)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담대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시오.”

발보다 빠른 것이 말이라고 하니 베드로 자신도 교회 안에서 들려오는 뒷소리들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저 사람 말이야, 저렇게 보이지만 글쎄 세 번씩이나 우리 주님을 배반한 인물이라는구먼.” 베드로는 평생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멍에를 짊어지고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기를 거듭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야,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간절한 마음과는 다르게 말과 행위가 따르지 않는 자신의 약점을 익히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기도와 “끊임없는 교회의 기도”(사도 12,5)에 힘입어 베드로는 교회의 수장이 되어갑니다. 베드로는 분명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결코 밀려나지 않는 하느님 자비의 증인입니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아침, 아무 것도 잡지 못한 지난 밤의 실패에 붙들려 뒤로 물러나는 베드로를 거듭거듭 당신께로 끌어 당깁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이 질문은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절망하고 실패하여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베드로의 밤”을 기억하면서 베드로와 함께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