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7년 12월의 말씀

가난의 감각

 

“성

탄이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각적 이미지는 전기불로 장식된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빨강 초록 원색의 온갖 장식품들일 것입니다. 기쁘고 흥겹고 연말파티와 모임들, 맛있는 음식이 떠오르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닙니다만, 성서 속 성탄, 예수님 탄생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추운겨울, 모닥불, 캄캄한 밤, 여관방조차 찾을 수 없어 만삭인 마리아를 데리고 찾은 마굿간, 짐승들, 가난한 목동들. 이것이 성서의 성탄 이야기 속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캄캄하고 적막한 시골 어느 구석의 쓸쓸한 밤 하느님의 아들 아기 예수가 태어나 마굿간 구유에 뉘어졌고 탄생을 축하하는 이들은 짐승들과 목동들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 그림 속 동방박사들은 다른 그림들과 달리 화려한 왕의 복장도 빛나는 선물도 없이 추운 밤에 길을 잃고 쭈그리고 앉은 모습이 청승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유다 베들레헴과는 아주 먼 거리에 살았던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찾다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잃고 인간이 만든 지도를 펼쳐놓고 열심히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거쾨더 신부님의 탁월한 통찰은 별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들을 이끌었던 별은 여전히 그들의 머리 위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별보다는 지도에 머리를 박고 길을 찾고자 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이끈 길을 인간의 방식으로 찾으려 한들 가능할 리가 없지요. 이 길은 인간의 지도로 찾을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어떤 감각, 가난의 감각만이 이 별이 가리키는 곳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혹시나 하고 헤로데 왕을 찾아가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성서전문가들은 유다의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유다 베들레헴’일 것이라 알려주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헤로데 왕은 자신의 경쟁자가 나타났다 여기고 아기살해 계획을 세웁니다. 아기가 자랐을 때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왕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면 그것이 누구든 무엇이든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될 뿐입니다. 동방박사들이 행여나 하고 찾아간 왕은 이런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찾았지만 아직 세속의 왕과 생명의 왕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동들은 다릅니다. 목동들은 남들 다 자고 있는 한밤중에도 양들을 지켜야 하고 들판에서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하며 들짐승들의 위협에 온몸으로 부딪치는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양을 훔치는 사람들로 취급받던 그 시대 가난한 이들 중의 한 부류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아들 아기가 태어난 곳에서 그다지 먼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무기, 식량 등 온갖 채비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이 나타나 알려주었을 때 어떤 의혹도 망설임도 없이 그들은 당장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아기와 너무도 가까이 있었고 너무도 닮아있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가난의 감각입니다. 하느님의 감각입니다.

가난이 몸안 몸밖에 흘러넘쳤기에 천사들이 알려주었을 때 가난한 아기의 소식을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마굿간, 추위, 무관심에도 가난한 아기의 평화로운 잠은 방해받지 않듯이 목동들의 평화의 아기를 향한 발걸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들은 완전하고 풍요롭고 휘황한 자리가 아니라 불완전하며 부족하고 삭막한 곳이 하느님의 자리임을 감각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리는 텅빈 자리, 가난한 자리, 심지어 황폐한 자리입니다. 화려한 곳, 빛나는 곳에서 어슬렁거린다면 하느님 비슷한 것을 찾을 뿐입니다. 아기 예수의 마굿간 바로 그런 곳이 성탄의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