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2월의 말씀

당신의 기억을 향하여

 

“우

리는 하늘도 땅도 주님의 것, 밤도 낮도 주님의 것, “땅이며 그 안에 가득 찬 것, 온 누리와 거기 있는 그 모든 것이 주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자신, 존재 자체도 분명 주님의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나의 주인께 돌려 드리는 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동안 모든 것이 내 것임을 주장하고, 더 많은 것이 내 것이기를 바랍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몸을 가두고 사는 우리도 “내 것”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모든 영적 욕망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라.”는 성 베네딕도의 권고에서 희망과 길을 얻습니다.

우리의 존재,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생각과 선을 행할 수 있는 의지도 선물입니다.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선물이며 은총임을 깨닫는 그 자리에 구원이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보다 앞선 것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삶을 긍정하고 그 존재를 지탱해 주는 근원적인 선물에 개방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이 근원적인 선물에 마음을 열고 그것을 인정할 때에만 구원이 우리 안에서 성취됩니다.”(신앙의 빛 19항).

빗방울이 자신의 존재를 고집하며 유지한다면 세상은 비가 내릴 때마다 홍수가 날 것입니다. 빗방울은 땅에 떨어져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땅에 스미어 새싹이 돋게 하고 수액이 되어 나무를 자라게 하고 온갖 것의 생명수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세상에 보내진 몸, 아버지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몸”임을 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사람들입니다. 믿는 이들은 세상 속으로 투신하되 세속적인 것에서는 멀어져야 합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권력, 명예, 재물을 따르는 것을 거슬러, 다르게, 낯설게, 더욱 차별화된 삶의 형태를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추구”하면 좋겠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시메온, 그는 결코 시대의 거짓, 우상, 폭력과 거대 자본, 화려한 소비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진실로 깊은 차원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의 기억,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 바로 이런 것들에 섬세한 주의를 기울이며 삶의 중심은 무엇인지, 삶에 의미와 방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행동하며, 기다렸습니다. 세상도 아니고, 스스로도 아닌, 오직 주님께서 만져 주시고 주님께서 위로하여 주시기를 기다릴 줄 아는 겸손을 지녔기에 시메온은 죽기 전에 구원의 빛을 만난 것입니다. 놀랍게도 “계시의 빛이며 영광”인 구원을 부드럽고 여리고 아주 작으며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게서 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아무 것도 갖지 않고 무장 해제된 이 아기가 “배척당하는 표징”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이사 26,8).

표지 그림 : 렘브란트 <시메온의 예언> 유채, 98×79cm, 1669년, 스톡홀름 국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