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3월의 말씀

 

너 어디 있느냐?

 

었다가 다시 찾은 것이 무엇일 때,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 모아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할까요? 그림의 “어떤 여인은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어 그것을 찾고자 온 집안을 쓸고 뒤적이며 찾고” 있습니다. 혹 장롱의 옷 안에 있는지 탈탈 털어 보았고, 의자도 광주리도 엎어져 있습니다. 하나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듯 아홉 개의 나머지 동전은 바닥에 드러누운 의자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습니다. “등불을 켜들고” 몸을 구부려 “샅샅이 뒤지며” 찾다가 드디어 잃어버린 하나의 동전이 바닥의 틈새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인의 기쁨과 평온은 천사의 기쁨이고 하늘도 그 기쁨의 빛을 감출 수 없어 방안을 환히 비추고 있습니다. 짐작하면, 여인은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 모아 잃어버렸던 은전 한 닢을 찾았다고 기쁨의 잔칫상을 차렸을 것입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다시 찾은 것의 정체를 알고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들은 아무런 실리 없음, 현명하지 못함, 비효율성, 궁색한 살림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그나마 가진 것마저 방탕하게 허투루 낭비하는 것에 대해 비웃거나 조롱하거나 질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을 구부린 채 등불을 켜들고 틈새에 끼인 동전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여인의 중심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세상과 사람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 나서시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먼저 사랑”하십니다. 질병, 불안, 슬픔, 분노, 소외, 억울함, 완고함과 비겁함 등의 온갖 어려움의 틈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빛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몸을 굽혀 찾고 계십니다. 절망의 질곡에서 벗어나, 이기(利己)의 땅에서 이타(利他)의 땅으로 건너가 새롭게 살고파 삶의 방향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은 굳은 결심을 합니다. 물론 “내가 돌아서야 하는 나의 의지적 행동”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회심은 은총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의지일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가오리다. 저희의 날들을 예전처럼 새롭게 하여 주소서.”(애가 5,21).

3월, 수도원 뜨락과 길섶 마다에는 땅 밑에서 추위와 어둠을 이겨낸 씨앗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용기와 희망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맨몸으로 겨울을 지낸 나무들의 가지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되어 새순이 움트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고마운지요! 우리도 일상의 단순함과 충실성이 행여 모자라거나 지나치지는 않는지 기도의 발걸음과 일하는 손에 더욱 정성을 다하며, 원천의 맑고 깊은 샘물에 몸도 마음도 다시 한 번 비추어 봅니다. “자매들은 모든 사람들을 다 함께 영원한 생명에로 이끄시는 그리스도보다 아무 것도 우선시키지 않으며, 단순하고 숨겨지며 노고에 찬 생활 안에 항구하는 그만큼 기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트라피스트회헌).

나의 동전을 찾고자 여인이 밝힌 등불은 한 사람의 죄인을 구원하고자 밝히는 부활초가 되어 우리 앞에 곧 나타나 보일 것입니다. “그 빛을 만날 때까지, 그 빛 안에 쉴 때까지, 모든 이와 그 빛을 나눌 때까지는”(프란치스코 교종) 초조한 갈망의 기쁨을 멈추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표지 : 렘브란트 <돌아온 아들> 부분그림

도메니코 페티(1589~1624)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 프레스텐 국립미술관,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