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7년 9월의 말씀

 

공동체와 혼인, 정배

하느님 사랑의 불꽃

 

“세

상은 빛과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빛은 사람의 얼어버린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고, 생동하는 열정으로 가득 채워줍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실재적 능력이 펄펄 살아 뜁니다. 하느님은 사람과 생동하는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어 당신의 발가락 하나만큼도 되지 않을 좁디좁은 세상으로 내려오시고, 그보다 더 좁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살아있는 열정으로 가득히 현존하십니다.

무슨 꿈같은 소리, 꿈 중에서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느냐고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현실을 보라고, 바로 너의 주위를 한 번 둘러보라고 하실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사랑에 빠진 이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조금은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보다 몇 배 더 찬란한 세상을 맛보고 있을 것입니다. 암울했던 잿빛 일상이 새로운 광채를 띠며 눈앞에 나타납니다. 어떤 불꽃이 그들 안에 새롭게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지요.

고대의 유대인들은 그리스 문화가 세상을 지배하던 기원전 2-4세기에 이 인간의 사랑이 바로 야훼 하느님의 불꽃임을 보았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오랜 이집트, 바빌로니아 문명에서도 사랑은 아가에서처럼 찬양받습니다. 그들의 사랑 노래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던 이 아가서의 저자는 과감하게도 이집트에서 사랑의 여신이 사랑을 관장하던 것을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싹 밀어냅니다. 그리고 여신의 상징들이었던 노루, 비둘기 등을 사랑의 상징으로 격하시켜 오히려 사랑의 생동감을 더 강하게 해줍니다. 이것을 어떤 학자는 “사랑은 신이다.”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로 옮겨가는 데 수천 년이 걸렸다는 표현을 쓰는데, 기가 막힌 통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가서의 저자는 인간의 육적 사랑을 동반한 남녀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가장 강한 불꽃을 보았습니다. 연인끼리의 육적 사랑의 표현 가득한 이 저서가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 정경(정통 성경) 안에 든 것은 유대인들의 신적, 인간적 감각의 탁월한 조합의 결과물일 것입니다. 수많은 신비가들이 이 아가서에서 하느님 사랑, 인간 사랑의 분리할 수 없는 깊은 연결과 그 신비적 차원에 매료되었습니다. 가장 특별할 수도 있지만 가장 일반적이기도 한 인간 사랑의 이야기가 하느님 사랑의 이야기가 됩니다. 즉 가장 비종교적인 것이 종교적인 것이 되고, 비종교적인 것 안에 종교적인 것이 가득함을 봅니다. 분리가 없어집니다. 일상이, 지루하고 매일 똑같은 일상이 신성화되고 잔치가 됩니다.

아가서는 갇혀있던 하느님의 불꽃을 세상 안으로 끄집어 내줍니다. 이 불꽃만이 우리를 참으로 생동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공동체는 이러한 하느님의 불꽃을 아가서처럼 세상 안으로 끄집어 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불꽃은 수도자 한 명 안에, 모든 사물 안에, 모든 생물 안에, 모든 문화 안에 내재해있지만 단지 꺼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의 불꽃을 꺼내는 이가 바로 하느님의 정배인 것입니다. 365일 변하는 일도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7번의 기도, 신적 독서, 노동, 매일 만나는 똑같은 사람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이 아니라 정배의 찬란한 빛을 띠고 다가옵니다.

꿈을 꾸는 것일까요? 꿈은 꾸어야 꿈인 것이지요. 꿈은 허황한 SF영화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수도생활을 오직 금욕과 원칙과 규칙으로만 보는 이는 연인의 사랑을 맛볼 수 없고 어쩌면 거룩하되 우울하며 열정과 생동감이 줄어든 마른 빵과 같은 삶을 영위할지도 모릅니다. 수도생활은 하느님 정배로서의 삶이요, 하느님현존의 생동감이 펄펄 뛰어 이미 여기서 하느님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