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7년 3월의 말씀

3월 시선의 바깥

공동체와 카리스마,

성령

“아

아포토시스(Apoptosis), 세포 스스로 죽는다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00조 개에 이르는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이 세포들이 일정한 시기가 되면 죽어 새로운 세포들에게 자리를 내줌으로써, 세포 하나에게는 죽음이지만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에는 역설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더 좋은 조건이 됩니다. 그런데 세포가 때가 다되어 제기능을 다 하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자리를 차지하여 새 세포들이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이것을 암세포라 합니다. 이렇게 세포가 스스로 죽지 않으면 인간 자신의 생명이 위태롭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죽음이 있어야 다른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선의 바깥”이라는 묘한 제목이 붙은 이 그림, 죽어가는 배추의 몸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호박꽃과 이미 열매까지 열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새생명, 새 세상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 수도회의 카리스마 역시 이 역동적 흐름 속에 있습니다. 시토회라는 수도회의 카리스마를 거꾸로 짚어나가면, 시토회➡클루니(베네딕도 수도회)➡베네딕도➡초기 사막수도승으로로 이어집니다. 화살표 사이에는 물론 죽음과 새생명의 탄생이 바다 파도처럼 끊어짐이 없이 서로 겹치며 이어집니다. 화살표를 거꾸로 거슬러 초기 수도생활로 가보면, 예수 그리스도 사후 맹렬히 퍼져가던 그리스도교와 그 맹렬함을 따라잡기라도 하듯 로마의 탄압이 무섭게 내리쳤고, 수많은 이들이 순교를 하며 피로 맺은 열매인 믿음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313년 그리스도교가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인정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국교가 되면서 박해받는 교회에서 특혜받는 교회로 바뀌게 되자, 교회는 세상의 물결이 넘실넘실 넘어와 그리스도교 정신의 핵심만을 살아가던 박해받던 시기의 맑음과 뜨거움이 혼탁함과 미지근함으로 바뀌어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됩니다. 그러자 그 뜨거움에 목마른 이들이 사막에서 시작되고 있던 수도생활로 몰려갑니다. 그러니 수도생활의 정신에는 순교의 정신이 빼도 박도 못하게 강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 세대는 순교로 죽어갔지만 그 정신은 수도생활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삶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막에서의 은수생활이 활짝 꽃을 피워 절정에 이를 무렵,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회인 아우구스티노와 바실리오, 파코미오 수도생활이 생겨납니다. 이 은수생활과 공동체생활의 두 흐름은 마치 두 개의 강물처럼 서로 섞임이 없이 도도히 흐르다가 5세기 베네딕도 성인에 이르러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져 큰강을 이루게 됩니다. 즉 성인은 자신이 쓴 수도규칙 속에서 전해받은 은수와 공동생활이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두 전통을 받아들입니다. 침묵과 공동생활, 순명과 자유, 절제와 나눔, 노동과 기도생활 등이 하나의 생활 형태 안에 공존함으로써 예수의 정신과 가치를 한 울타리 안에 형제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균형잡힌 수도생활을 세웠고, 이 생활과 수도규칙은 이후 서방 수도생활의 근간이 되고 베네딕도는 수도승, 서양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역사의 복잡함 안에서 베네딕도회는 사라지고, 부침을 거듭하던 수도생활은 10세기 클루니에 이르러 제후, 귀족들로부터의 끈을 끊고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자유를 토대로 힘차게 발전합니다. 고대로마에서 중세유럽에로의 이전에서 피할 수 없었던 봉건제도의 틀 안에서 그리스도교는 봉건의 옷을 입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11세기 시토회는 수도회로부터 이 옷을 벗겨내고 베네딕도성인이 세운 원래 모습의 수도생활을 다시 회복합니다. 母공동체가 세운 子수도원으로부터 세금을 받고, 법제정은 오직 모공동체에만 귀속된 당시의 틀을 과감히 깨고 오직 사랑의 법으로만 통치하는 새로운 카리스마가 탄생하고, 가난과 사랑이라는 그 시대의 언어를 앞 세대의 성취 위에 세워갑니다. 클루니 개혁이 없는 시토가 있을 수 없고, 베네딕도 없이 클루니는 존재할 수도 없으며, 베네딕도는 거의 온전히 사막 은수생활과 공동체생활의 전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의 죽음, 하나의 탄생 그 신비의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