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6년 12월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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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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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김이 오르는 양푼이 한복판에 있고 그 주위로 일곱 사람이 그려져 있는 그림입니다만, 시장 전체의 시끌벅적한 느낌이 화면 가득 배어나옵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굳이 시골까지 가지 않더라도 큰 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왼쪽에서 두 번째 할머니는 가져온 물건을 다 팔았는지 커다란 바구니 속이 텅 비었고, 국수 한 그릇을 다 먹어 손에 들고있는 그릇은 이미 비어있습니다. 가져온 물건을 다 팔아 맘이 넉넉한지 통 자리를 뜰 생각이 없고, 국수 말아주는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가 한참입니다. 국수 마는 할머니는 “그려 그려 인생 그런 것이여”라는 표정으로 십년지기라도 되는 양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입고 있는 옷들이 비슷하듯 서로 나누는 인생살이도 아마 비슷할 것이고, 이야기 구절구절마다 자신의 이야기인 듯 고개가 끄덕여질 것 같은 분위기가 전해져옵니다. 오른쪽에 두 사람은 국수 그릇까지 삼킬 듯 먹는 데만 열중하는 것 같지만 후루룩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나면 슬쩍 이야기 속으로 끼어들 것 같습니다.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는 할아버지와 등에는 짐을 진 채로 걱정이라도 있는 듯 저 먼곳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부부사이인 듯한데, 할아버지가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기를 기다려 곧 일어설 것 같은 자세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이 어울려 그려내는 시장의 한 모퉁이 풍경, 가난하고 힘겨운 노동으로 매일을 보내는 고단한 백성들의 모습 안에 볼 수 있는 사람다움과 인간에 대한 자연스런 관심이 한복판 양푼이 속 김처럼 따뜻함을 피워내는 그림입니다. 가진 것 많고 자랑할 것 많고 빼앗길 것 많아 지키기에 급급한 이들 사이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가난함이 곧 인간답지 못하고 추하고 저속한 것이라 사기를 치고 사람을 다치게 하더라도 내려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만 보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결코 깃들 수 없는 정경입니다.

심지어 가난함의 특권이라고까지 표현한다면 가난한 이들에 대한 모독이 될까요? 지금의 시대에선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이천 년 전 예수님은 아예 공개적으로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 하느님 나라는 분명 이 지상의 나라는 아니지만, 이미 이 지상에서도 그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그림처럼….

이 그림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아기 예수님이 누워있는 구유의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이만큼 아름다운 구유도 찾기 어렵지 않을까요! 이천 년 전에는 목동들이 마굿간으로 찾아갔지만, 이제는 아기예수님이 먼저 이들을 찾아와 이분들의 품에 안기는 상상을 해봅니다. 서로 얼마나 어울리는지! 얼마나 닮았는지! 얼마나 잘 통하는지! 가난한 마음, 가난한 옷, 가난한 음식, 가난한 자리. 이런 곳에서 가장 큰 관심은 사람입니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고, 작은 것에도 서로 관심을 가지니 이렇게 따뜻한 풍경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저 풍경 속에 나 잘난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버리겠지요. 저 구유 속에 함께 들어가고 싶다면 우리도 작고 가난하고 낮아짐을 싫어하지 않고, 그렇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 살같은 마음으로 변모되어야 합니다. 저이들처럼 타인에게 어떤 울타리도 없이 처음 만나도 가족들의 온갖 근심거리까지 툭 털어놓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도 아기 예수님 담는 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아기예수님을 닮은 가난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작고 여리게 작고 여려서

밤하늘 별빛보다 여리게 작고작은 이들만

오신 아기 알아채는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