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6년 6월의 말씀

호시노 토미히로

사랑, 생명,아름다움

혼반지는 필요 없다고 했다

아침에 얼굴을 씻길 때

내 얼굴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면

내 몸을 들어올릴 때

내가 아프지 않게 하려면

결혼반지는 필요 없다고 했다

지금, 레이스 커튼 사이로 스며든

아침 햇살 속에서

내게로 온 당신이

대야에서 차가운 물을 뜨고 있다

그 열 손가락 끝에서

금보다도 은보다도

아름다운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호시노 토미히로. 대학을 졸업하던 바로 그 해 6월, 체육교사였던 건강한 젊은이는 체육관에서 학생들 앞에서 공중제비를 돌다 순간적인 실수로 목 아래 몸 전체가 마비되고 맙니다. 삶의 모든 것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남에게 의지하고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전신마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목뿐이었습니다. 친구가 인사하길래 자기도 팔을흔들려 했으나 팔을 움직일 수 없기에 혀를 흔들었다는 사람. 그리고 이런 그를 입원 후부터 줄곧, 그야말로 한시도 떠나지 않고 옆을 지킨 어머니. 그런 그가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림을 완성했을 때 그 그림을 보며, “부상을 당한 건 내게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 입원한 뒤 줄곧 내 곁을 지켜온 어머니도 아마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죽고 싶었던 기억보다는 ‘살아야 해’라고 깨우쳐 주신 어머니와 성경의 말씀이 더 강하게 남아있습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어머니의 한 마디 “살아야 해!” 라는 한 마디. 죽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을 그의 마음을 쪼개고 흔들어 다시 삶에로 아니 더 힘차고 맑은 삶에로 끌어당겨주는 불씨였나봅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하나님께서 딱 한 번만

이 팔을 움직이게 해주신다면

어머니 어깨를 두드려 드리리라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개신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면서 새롭게 채워지고, 건강할 때 없던 생명을 얻게 되며, 자신의 입에서 평생장애조차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고백이 터져 나오게 합니다.

그런 그에게 와타나베라는 여성이 나타나, 그의 평생 동반자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위의 시는 수국 그림과 함께 자신의 아내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시입니다. 그러고 보면 생명, 사랑, 아름다움, 진리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로 엮여있음을 알게 됩니다. 얼굴에 상처를 낼까봐 결혼반지가 필요없다는 사람. 이런 사랑에는 생명이 흘러넘칠 수밖에 없고, 이런 생명 앞에 사람은 절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아름다움에 압도된 사람은 거짓이 아닌 진리, 헛된 것이 아닌 참된 것을 향해 움직여가게 되나봅니다.

이 그림과 시 속에는 호시노 토미히로, 어머니, 아내 와타나베 세 사람이 함께 보입니다.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요. 사랑은 서로 사이에 흐르는 것이니까요. 사랑은 상대의 고통 앞에 작아지기는커녕 더 커지고 더 깊어지는 것이니까요. 이런 사랑이 깃든 그림, 글은 다른 이에게도 사랑과 생명이 솟아나게 해줍니다. 사랑과 생명은 흐르니까요. 그리고 이런 사랑과 생명이 흘러드는 곳에는 아름다움이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