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6년 1월의 말씀

2016.1월소식지

 

사랑의 그물망

해 아침, 노란색이 묻어나는 그림 한 편 보냅니다. 추계대사도(雛鷄待飼圖). 병아리가 먹이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그림으로 12-3세기 송나라 화가 이적이라는 남자가 그린 것입니다. 남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 포근포근 폭닥폭닥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림을 먼 시절, 남자란 근엄한 존재이던 시절에, 남자가 그렸다는 것입니다. 어떤 전경 속 한 부분이 아니라 오늘날 데생처럼 달랑 병아리만 그린 동양화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문득 이적이란 화가 자신이 궁금해져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송대 무명 화가라는 사실 외에 별다른 수확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큰 수확이지요. 무명화가라는 사실, 아마도 궁핍했을 가능성이 크지요. 일생 노력해도 명예도 부도 따라오지 않은 가난한 마음이 아니고선 잡아내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달랑 병아리 두 마리 그림이지만 보는 이의 마음에 슬그머니 따뜻함이 스며듭니다. 두 마리가 한 방향을 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마리는 앉아있고 다른 한 마리는 반대쪽을 향해 가다가 머리를 돌린 듯합니다. 어미 닭 혹은 주인이 먹이를 주려하는데, 그쪽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금 별난 착상이지요. 보통 종종 걸음으로 달음질하는 병아리들의 모습을 보았던가 봅

니다. 그렇다고 먹이를 보고도 그저 밍숭맹숭 혹은 이미 배가 부른 그런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그 이유는 한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두 마리의 눈에는 먹이를 향한 간절함이 묻어나오니까요. 먹이를 보고도 달려가 낚아채지 않고, 느긋이 기다리는 어미에 대한 신뢰라고나 할까. 어미가 넉넉히 주리라는 앞선 경험이 포동포동 노란 몸을 봄의 생명력으로 가득 차게 만드나봅니다.

동물의 세계든 사람의 세계든 이런 경험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경험이 서로 왔다갔다 하는 곳, 그곳에는 참생명이 약동합니다. 참생명은 다시 더 큰 사랑을 낳아 자신들이 속한 사회, 공동체, 가정 안이 생명력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결코 자신 안에 갇혀있을 수 없으니까요. 타인을 먹이고 살리고 자신을 내어주고 남의 것에 감사하고 있는 것은 나누고 부족한 것은 받고 멈춤이 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불안에 빠지거나 정처없이 흘러다니지 않습니다.

사랑은 작고 작은 것에 마음이 가고, 작고 작기에 서로 몸 기댈 줄 알고, 작은 것 안에나 큰 것 안에나 그 속 깃든 신비에 눈 뜰 줄 알기에 세상 안에 사랑의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그에게로 너에게 나에게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이렇게 엮인 그물망은 누구든 안전하게 살아갈 생명의 터전, 생명을 낳는 터전이 됩니다. 새해에 야무진 꿈 하나 꾼들 탓할 이 없겠지요.

 

 

<손수레>

섬김의 분주함은 영의 평온을 부르고

섬김의 고단함은 육을 부드럽게 단련하고

섬김의 내어놓음이야말로 존재의 충만이니

자신을 내어놓고

타인의 유익을 위해 움직이는 손과 발은

하느님 사랑 실어 나르는 손수레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