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5년 7월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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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입읍시다!

님 제 기도를 들으소서.

제 부르짖음이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제 곤경의 날에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지 마소서.

제게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제가 부르짖는 날 어서 대답하소서.

저의 세월 연기 속에 스러져 가고

저의 뼈들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저는 잊어

제 마음 풀처럼 베어져 메말라 가고

탄식소리로

제 뼈가 살가죽에 붙었습니다.

저는 광야의 까마귀와 같아지고

폐허의 부엉이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잠 못 이루어

지붕 위의 외로운 새처럼 되었습니다.

… 당신께서는 일어나 시온을 가엾이 여기시리니 …

(시102,2-8, 13)

지거 쾨더 신부님의 시편102를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여기에 옮긴 이 시편의 앞부분은 곤경에 처한 한 개인의 울부짖음 같습니다만, 그 다음 부분들은 하느님이 시온을 굽어보시리라는 믿음, 희망, 기원들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수천 년 전 유다의 한 시인의 탄식과 울부짖음인데, 어찌 오늘의 우리 처지와 이리도 닮았는지요! 개인의 곤경이 한 나라의 불운과 조금의 편차도 없이 나란히 이어지는 감동을 이 시편 저자를 통해 느끼며, 우리나라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다수의 사람들의 희생조차 눈도 깜짝않는 세태 속에서 이 시편 저자의 사심없는 마음이 더 고귀하게 다가옵니다. 오늘의 우리나라는 꼭 이 그림과 같은 상황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성 싶습니다. 폐허 위의 외로운 까마귀 한 마리와 부서진 집 속 광대뼈 앙상한 한 남자의 잠 못 이루는 괴로운 나날과 회색빛 하늘 =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에 떠는 나날들, 이미 내쳐진 이들의 자살을 부르는 회색빛 절망,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의 애타는 울부짖음, 부정선거의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도 언론조차 꼼짝 않는 답답함, 메르스가 창궐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는 상황 – 속에 힘없는 개인은 불행에 내던져진 채, 손을 뻗쳐 도움을 구할 사람 하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아무도 없습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없고, 지붕 위의 까마귀 역시 곤경에 처하기는 마찬가지이니 도와줄 여지가 없지요. 내 목숨 내가 챙겨야 할 상황인데 그 마저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그야말로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절규하는 남자의 옷은 아마도 환자복 같기는 합니다만, 그 색이 파란색입니다. 이 칙칙한 그림 속 유일한 푸름입니다. 희망은 저기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로 희망이라는 메시지 아닐까요?????

우리의 희망은 세상 안의 긍정적 상황이나 좋은 국가 같은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 자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 자신일 수도 없습니다. 옷의 색깔이 파란 것처럼 누군가가 우리에게 희망을 입혀줍니다. 그 누군가는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한 인간일 수는 결코 없고, 더욱이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누가 희망을 줄 수 있겠습니까? 이 시편 저자처럼 오직 한 분 생명과 사랑의 하느님을 향해 외치는 이, 절망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고 희망을 찾아내는 이, 그가 바로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