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4년 9월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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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된 단 한 가지

 

쪽으로 싹 갈라놓은 듯 서로 다른 두 그림, 흑백이기는 하지만 색깔도 흰색과 검은 색으로 대비되어 있습니다. 오른 쪽은 나이 많은 어른, 왼쪽은 아직 어린 아이입니다. 한 사람은 손에 무기를, 다른 사람은 고운 음을 내는 수금을 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표정은 두려움, 불안, 시기, 공격성으로 일그러져있고, 다른 쪽은 평화, 풍요로움, 잔잔한 기쁨이 흐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손을 꽉 움켜쥐고있고, 다른 이는 활짝 펼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눈은 다른 이를 훔쳐보거나 혹은 흘겨보고 있고, 다른 이는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향해 깊이 침잠해있습니다. 한 쪽은 부러질 듯 이를 꽉 다물고 있고 다른 쪽은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고 있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다윗과 사울왕입니다. 한 시대 한 공간을 살아가지만 각자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참으로 다릅니다. 이 드넓은 우주 공간, 내가 차지한 이 좁은 곳마저 폭력과 두려움으로 꽉 차게 할 수 있고, 한없이 좁은 이 나만의 자리를 기쁨과 평화, 사랑이 넘쳐나는 작은 샘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울왕은적을 물리치고 백성이 평화로워진 데 대한 감사보다는 자신보다 공적을 더 쌓은 다윗이 임금으로 추대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지만 백성을 아끼는 왕이 아니라, 자신의 왕위와 안녕이 더 중심인 왕입니다. 백성을 염려한다면 적을 물리칠 용기와 지혜를 지닌 다윗같은 신하가 생긴 것에 든든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쉽사리 다윗에게 왕위가 넘어갈 수 있다는 쪽으로 움직였고 그럴 때면 마음이 너무도 산란하여 견딜 수가 없어 평화 가득한 다윗의 수금 소리를 들어야만 진정이 되곤 하였습니다. 평화가 가득한 이의 음악, 글, 말, 표정은 다른 사람을 치유해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마저 효과가 없고 오히려 그의 질투심을 더 부추길 뿐이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약점이 많은 이였지요. 아내 바쎄바를 얻는 과정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자비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약함이 죄로 이어질 때마다 그는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제가 하느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그분의 손에 맡깁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중심에는 자신이 아니라 왕과 백성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함에 그의 손길을 피해 도망다닐 때 그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와도 하느님이 정한 사람을 내 손으로 없앨 수 없다고 하며 그를 놓아주고는 정처없이 떠도는 삶을 택합니다. 평탄하지 않은 자신의 삶 굽이굽이 다윗은 끝없이 자신의 중심을 비워내고 하느님으로 채웠습니다. 그의 평화, 고요, 기쁨이 흘러나오는 곳은 바로 이 자리입니다. 이것이 사울에게 결핍된 단 한가지입니다.

 

중심에서 나올수록 중심에 집착할수록

약함이 시기심같은 약함이

나를 물들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집어삼킵니다

중심이 텅 빌수록 중심을 채우려할수록

하느님의 색깔이 탐욕이

나를 물들이지요 사람을 목매 끌고다닙니다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