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4년 8월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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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음에 목말라

 

즘 세상이 혼탁하고 혼탁하여 숨쉬면 더러운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워버릴 듯 합니다. 그 혼탁함이 온몸을 돌아 내 피에 섞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몸이 오싹해질 때조차 있습니다. 나는 그들과 달라!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 이렇게 자부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때 자신이 비난하는 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공직자로 내세울 만한 사람이 그리도 없어 지명된 이들마다 온갖 비리와 부정으로 범벅이 되어 있건만 정작 그 당사자들은 대체 뭐가 그리 문제냐는 듯한 표정들이니, 이것이 더 한심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나만 그런가 세상이 다 그런걸. 그렇게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는 탓인 것을 괜히 시샘을 하고 있는 것이라 여기는 듯 한 표정마저 읽힙니다.

세상에서 남의 것 탐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살다보니 자기 앞가림조차 할 수 없는 처지로 사는 사람들은 병신, 쪼다 소리나 듣게 되는 그런 세상이 되었음에도 가진 것 많은 이들은 이런 세상이 정상이라고, 그러니 없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라고, 괜찮은 세상이라고 떠들어댑니다.

타인의 아픔을 바라볼 여유라곤 바늘 끝만큼도 없거니와 그들이 가진 것조차 어떻게든 빼앗아야 성이 찰 모양입니다.

정말로 목이 마릅니다. 맑고 바르고 깨끗한 그래서 남을 씻어주고, 목마름을 채워주고, 남의 모습을 비추어줄 수 있는 어떤 것이 그립습니다. 타는 목마름에 온갖 그림들을 다 뒤적여 보았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고요한 자연 풍광을 그린 그림도 이미 그 안에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기에, 타인의 모습을 비추어 줄 그런 정도의 것을 채워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접한 것이 자연을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고인 맑은 이슬들, 투명하여 남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그 청결함! 하지만 그 속엔 얼마나 많은 먼지들과 우리가 모를 세균들이 있는지요? 그러나 세상 안의 맑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세균 하나 없는 맑은 물을 찾는다면 약국에서 증류수를 사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하지만 증류수라는 물은 우리에게 생명의 물이 되어주지는 못합니다. 생명의 물 속엔 적당히 균도 들어있지만 그 속에 미네랄이나 온갖 것들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를 살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지만 남을 살릴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힘이 맑음이 아닐까요

 

하늘은 가난한 이들 위해 타인의 고통에 마음 무너져

땅은 온유한 이들 위해 우는 이들

그들 마음의 명랑함

땅 위 온갖 것들 그들 정신의 평온함

독차지하고 있는 이들 어찌 보지 못하는가

비웃음 소리 땅을 채워도

놓칠까 빼앗길까 당할까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것 외에

전전긍긍 슬퍼할 일이 도대체 없는 이들

속태우는 소리 또한 그 마음의 자물쇠

땅을 채우고 있지 열 사람이 없다네

이들이 잠시, 눈깜짝 할 사이 그 속 썩는 냄새

소유하고 있는 이 땅 누구를 먼저 질식시키는가?

어떤 이들은 영원히 소유한다네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