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HELM VON SAINT-THIERRY
샹 티에르의 윌리엄
MEDITATIVE GEBETE
묵상 기도
첫 째 묵상 - 하느님이 예정하신 일의 신비
들어가는 말
인간은 질그릇과 같은 것, 하느님의 자비로 인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 하느님의 손이 그를 만들었고, 그를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만드셨지만 죄로 인해서 인간은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일하여 그는 잃었던 닮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또한 그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을 택할 수도, 악을 택할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구원받을 수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느님은 이미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알고 계시며 이에 따라 그의 운명을 결정하신다.
-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 누가 그분의 판단을 헤아릴 수 있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의논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로마서 11, 33-34) 당신은 자비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하고 싶은 사람을 동정하십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안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9,15).
-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은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내가 너희를 만들었고, 나는 여전히 너희를 업고 다니리라.”(이사야 46,4)라는 말씀을 듣지만 그 도공의 손에서 뛰쳐나갑니다. 그는 보호해주고 업어다줄 주인의 손에서 뛰쳐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지그릇은 떨어져 깨어지고 마침내 짓밟히고 맙니다(레위 6, 28; 15, 12). 그 때 오지그릇은 외칩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느님께서 사람을 책망하십니까? 누가 감히 하느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로마서 9,19) 그리고 그는 덧붙여 말합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로마서 9,20)
오, 영원한 지혜시여, 진흙덩이에서 만들어진 질그릇이, 부수어버려야 할 진노의 그릇이 감히 이렇게 당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로마서 9,22). 그들은 오히려 당신 앞에서 벌벌 떨어야 마땅할진대, 당신을 붙잡고 간청해야 마땅할진대 말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같은 진흙덩이를 가지고 하나는 귀하게 쓰일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하게 쓰일 그릇을 만들 권리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로마서 9,21).
그러므로 당신께서 영예와 영광을 주시려고 간택하신 그릇은 자비의 그릇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오만불손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그들의 창조주로 알아 모시고, 그들의 도공으로 인정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당신의 손이 빚어 만드신 진흙덩이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자들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그들은 부서지고 짓밟히고 소멸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으며 당신의 은총의 덕분으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은 창조주시며 저희는 진흙덩이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저희는 당신에게 매달려 있습니다. 여전히 당신의 강한 손이 저희를 받쳐줘야 하고, 저희는 늘 당신의 세 손가락에 매달려 있습니다. : 믿음, 희망, 사랑, 이것들을 통해서 당신은 우주의 대기권을 떠받치시며(이사야 40,20) 즉 굳건한 성교회를 세워주십니다. 당신의 자비를 저희에게 보여주시고, 당신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소서! 주님이시여, 당신의 성령의 불로 저희의 콩팥과 마음을 불살라주소서(시편 25,2).
당신이 하신 온갖 좋은 일에 격려와 힘을 주시어(2데살 2,17 시편 67,29), 결코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게 하시고, 흙으로 되돌아가거나 무(無)로 되돌아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저희는 당신을 통해서, 당신을 위해서 창조되었나이다.
저희의 그리움은 당신께로 향하고 있습니다(아가 7,10). 저희는 당신을 저희의 창조주요 조물주로 받들어 모시며 칭송합니다. 당신께 경배 드리며, 당신의 지혜를 청합니다, 당신은 지혜로써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당신의 대자대비 하심을 보여주십니다, 당신은 지혜로써 모든 것을 조화시키시고, 또 보존하십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저희를 완성시켜 주소서, 당신이 저희를 만드셨던 그 모습으로, 당신을 닮은 완전한 모습으로 저희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소서!(창세 1,26)
- 진흙덩이로 빚어진 오지그릇이 또한 흙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질그릇이 당신께 외칩니다. -떨어져 깨어질 진노의 그릇이- “왜 당신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로마서 9,20) 영광을 담을 그릇은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정의(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도달하기 위하여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을 확신을 가지고 입으로 고백합니다(로마서 10,10). 당신은 얼마나 선하신지(시편 118, 68), 당신이 하신 일은 놀랍기만 합니다(마르코 7,37). 당신은 정으로써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으로 만드시고 다른 것은 천하게 쓸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강요당하여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행하여 공덕을 쌓도록 하셨으니 이것이 덕의 본질입니다. 덕이란 선의로 선에 자유로이 동의하는 것입니다.
- 영원한 지혜시여, 당신의 전지하심으로 각자가 그들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들의 삶 안에서 어떻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각 사람을 위해서 헛되이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은총을 마련하셨기 때문입니다(2고린토 6,1).
당신의 예지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예지는 당신의 지혜이며, 설령 피조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그 예지와 지혜는 영원에서부터 영원까지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이 영원으로부터 있었고, 정해진 때에 태어날 피조물에 대해서도 당신은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당신과 본질이 같은 말씀 안에 말씀을 통해서 모든 것이 창조되었고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천지창조는 당신에게 미래가 아닙니다(요한 1,4). 그분 안에 이미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생명은 미래에 있을 형태로 이미 그분 안에 있으며 전적으로 미래지향적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생명이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래의 것은 그분이 원하셨던 형태로 그분 안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 무엇을 말하려고 합니까? 어쩌면 미래에 있을 존재가 지금 이 시간과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본질과 영원에 접근해 보려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미래의 것이 현재 안에서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마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전지하심과 예지는 “나는 진리이다.”(요한 14, 6)라고 말씀하시는 진리 자체이십니다. 오, 하느님, 당신의 예지가 미래에 있어야할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듯이 앞으로 있을 일들을 미리 아는 것 또한 당신에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당신에게는 없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이 어떤 존재이든지, 그것이 현재에 있는 것이든 과거에 있었던 것이든, 미래에 있게 될 것 이든지간에 생명은 당신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립니다.”(시편 12,8) 오, 사람아, 악인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벗어나 진리로 향하거라! 진흙으로 빗어진 질그릇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물론 하느님의 예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멸망하게 될 것을 아시면서도 미리 정하신대로 하십니다.
- 하느님의 예지는 또한 그분의 자비입니다. 모두가 그것을 받아 들일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는 영원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예지는 누가 그것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하느님의 자비인 이 예지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피조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더라도 영원으로부터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성령이십니다. 영원히 성부와 성자와 함께 계시는 성령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물위에 하느님의 기운(바람, 영, 혼, 얼, 성령)이 휘돌고 있었다.”(창세 1,2)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내어주셨고 모두에게 드러났습니다. 선을 행하시면서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 바로 이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러나 악의를 품은 사람과 악을 행하는 영혼을 그분은 피하시는데, 그런 영혼 안으로는 영원한 지혜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지혜 1,4).
- 하느님께는 피조물에 대한 예지(豫知)가 예견(豫見)이지만, 인간에게는 하느님이 예정(豫定)하신 일입니다. 이것이 선택하심이 되든가, 진멸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성서는 말 합니다. :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요한 15,16) 예정은 곧 은총을 주시려고 준비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은총은 그것의 실행자체입니다. 당신이 잘못 생각하지 않으려거든 왜 이 사람은 선택하시고 저 사람은 멸하시는지 머리로 이해하려들지 마시오.
당신은 교만합니까. 교만이 당신을 지배하고 있다면 하느님의 예지에서 당신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에 합당한 미리 정해진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주신다.”(야고보 4,6)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교만은 물리침을 당할 것이고 또한 물리침의 표징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겸손은 선택을 받을 것이고 또한 선택의 표지입니다.
- 그러니 질그릇이 만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로마 9,20)라고. 다시 말하면 “왜 나를 이렇게 멸하시는 것이오? 라고. 그 때 진리는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진노의 질그릇이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멸하는 것은 너의 운명이다. 너는 교만한 자가 겸손한 자를 멸시하듯, 구원을 멸시했거나 멸망 시켜버릴 만큼 어리석은 짓을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것이며 너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멸망에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결코 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말하자면 그들의 가난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자비가 가까이 있다. 그러나 악명 높은 권력자들의 세도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지혜 6,7 시편 5,3). 겸손한 사람들에게만 나는 자비를 베풀겠노라.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다.“(로마 9,15). 질문은 계속됩니다. “왜 당신은 나에게 겸손은 주시지 않습니까? 나는 너에게 그 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주었다, 그것은 내가 준 자유의지이다. 그 안에서 너는 악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악을 선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시편 51,5). 그러나 너는 네 자신의 악함을 나에게 덮어씌웠고, 너를 변명하기 위해서 네 탓을 나에게 돌렸다. 너는 네 잘못으로 인해 너를 미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시편 35,3). 그리하여 너는 네 갈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사도 1,25). 진멸의 오지그릇은 진멸을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