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작품 선집
인간 세계로 돌아옴
그의 임무가 그에게 마치게 허용했던(85,13) 아가서에 대한 마지막 설교 끝 부분에서, 베르나르도는 하느님과의 일치의 기쁨이 자신의 동료 인간의 필요성에 응답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의 삶 전체가 활동에서 관상으로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저작들은 무엇이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은사를 다른 이들과 어떻게 나누었는지를 숙고해보아야 한다. 앞으로 나올 텍스트들의 선집과 이 서문의 끝에서, 우리는 베르나르도가 자신의 지식, 재능 그리고 타인에 대한 봉사에 있어서의 관대함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보기 위해 관상의 최고점을 남겨두어야만 한다. 그의 활동의 모든 것을 상기할 필요는 없다. 그의 활동의 동기를 일별하기 위해 몇 가지 상징적인 예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첫째로, 그와 가장 가까웠던 친척과 친구 그룹이 있다. 아가에 대한 26번째 설교에서 그는 자신의 형제 제랄드의 죽음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길게 표현했다. 제랄드는 피를 나눈 형제 중 한 명이었고 그 외에도 다른 형제들이 있었다. 제랄드는 자신의 수도승 중의 한 명이었으며, 수도승이었던 형제들도 많았다. 그런데 왜 그는 그렇게 큰 따뜻함으로 이 형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에게 그런 호의를 보이는가? 제랄드는 형제나 수도승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였다. 설교라는 형태로 베르나르도가 쓰고자 했던 것은 영적 우정에 대한 소론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생활의 다른 측면들 즉 우정, 상호 원조, 죽음의 신비, 상담에 다가가는 것은 이 관점으로부터였다. 성령으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다양한 상황들 안에서 성령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식별하기 위해 제랄드는 베르나르도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베르나르도는 특히 개인적 실제 예를 통해 가르쳤던 것을 보여주기를 원했는데, 즉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것을 변모시키고, 애덕의 고귀한 형태가 되게 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다. 일단 애정이 모든 에고이즘과 자기 이익의 자취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존재의 중심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를 향해 방향 지워진다면 마음의 애정은 하느님 체험에 어떤 장애물도 내놓지 않는다. 반대로, 애정은 모든 사람을 포함하도록 성장하는 이타적 차원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텍스트에서 분명한 수사학적 요소를 넘어 밀도 높은 인간의 자질이 나타난다. 설교에 사용된 문학적 도구는 그것을 그리스도교 휴머니즘의 걸작이 되게 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의 이별에 슬퍼하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는 심오하고, 열려있으며 밀도 높은 작품이다.
이 서문 첫 부분에서 우리는 이미 성 베르나르도가 두 번째 십자군 전쟁에서 했던 역할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것을 다시 검토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 활동의 동기에 대한 이유를 식별함에 있어 베르나르도의 강조점을 확인하게 해주는 두 가지 중심 텍스트들을 여기서 다시 제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십자군 이전 활동의 동기에 대한 이유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으로부터 고귀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갈망이었다. 십자군과 그 실패 이후 그 이유는 특히 순전히 인간적 관심과 이기적 계획이 순수해야 할 의도를 더럽혔을 때 인간 계획의 실패를 수용하는 겸손이었다. 십자군에 대한 성 베르나르도의 저작 가운데 희귀한 것인 두 텍스트 즉 회람 형식의 편지 363과 숙고에 대해 2권은 갑작스레 일어났던 이 사건이 성 베르나르도의 삶에 있어 한정적이었던 올바른 자리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베르나르도의 작품을 읽지 않은 이들은 그를 호전적이며 폭력적인 사람으로 제시한다. 그를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시대와는 다른 문화를 지닌 세대에 속하는 것에 대해 그에게 책임이 지워져서는 안되지만, 그는 자신을 영적 차원에 두기 위해 그 문화로부터 자신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베르나르도의 서간에 이르렀는데 -틀릴 수 없는 빛 안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세 번째 증거- 특히 자신의 인간됨을 나누는 편지들이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온갖 문제들을 들고 그와 상담하기 위해 왔다. 즉 교의, 교회 정책, 수도승 개혁, 특히 영적 생활에 대한 문의 혹은 단순한 인간적 관계 등의 문제들이었다. 한번은 교황 에우제니오 3세에게 “사람들은 당신이 아니라 내가 교황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걱정거리를 나에게 지우기 위해 사방에서 옵니다. 그 많은 친구들에게 나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죄스런 일이 될 것입니다.”(서간239)라고 쓴 적도 있다. 종종 그는 약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먼저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역사가들은 그의 시대에 관해 혹은 그 자신의 정치적, 교의적 위치에 관해 그리고 교회 사건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그의 긴 편지들을 조사하고 주석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인간 마음의 역사 안에서보다 인간 사고의 역사 안에서는 덜 중요한 그의 서간들의 다른 범주들이 있다. 이 서간들도 포함시키기로 했는데, 놓쳐서는 안 될 베르나르도의 한 측면을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치와 교회 문제에 한 인간이 관여했던 그 순간은 지나가고, 그 자리에 단지 인간 베르나르도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 하느님의 사람이요 성인인 그가 있다. 가장 깊은 반응들을 지닌 인간 그리고 완강한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 심리작용이 은총으로 젖어있는 성인이다. 성인은 언제나 마음의 사람이며, 그런 만큼 묵상 가치가 있다. 클레르보의 아빠스의 공적이며 사무적인 일에 관해 적게 혹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 서간들은 그의 내적 생활과 매일의 현존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 서간들은 그의 개인적 느낌의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의 사적인 편지라고 불릴 수 있다. 이 책에서 이것들 중 얼마를 선택하였다.
베르나르도의 서간들은 어떤 표현 형태들을 담고 있는데, 이것들은 필연적으로 그의 시대의 문학형태로부터 취한 것이며, 그의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즉 마음이 큰 사람, 자신의 수도승들의 아버지, 친구, 친절하기 그지없는 성인, 가난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작은 이들을 사랑하는 고귀한 그리스도인이다. 사고방식에 있어서 그는 우리들과 얼마나 가까우며, 과거에 우리의 태도를 경직되게 했던 공적인 문서에 주의를 기울였을 때 우리는 얼마나 잘못되었던가! 그 결과 우리는 엄격한 사람과 리더, 때로 권위가 부당한 것에로 이끌리는 리더라는 그런 청사진을 오래 지녀왔다. 베르나르도의 특징과 성격 안에 있는 경향들은 이 냉혹한 판단을 정당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확실히 진실된 것이다. 성 베르나르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만을 보유하거나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그의 최고의 덕과 특출한 은총만을 바라본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초상화가 불완전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실에 가깝지 않다. 그 자신은 결코 그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그가 받은 하느님의 호의보다 자신의 약함에 대해 더 자주 말하였다. 서간 70의 끝에서, 그는 어떤 합당한 이유 없이 자신이 화를 냈을 때의 사건을 상기하며 자신의 잘못을 자신에게 고발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경솔함을 따르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다른 경우에 그는 그가 받은 찬양을 거슬러 이의를 제기하며 자신에 대해 말할 때의 풍자를 사용한다. 그의 확고한 애덕은 백작 부인 에르멘가르드에게 보낸 두 편지에서 큰 부드러움과 애정으로 글을 쓰도록 그를 촉구하였다. 그는 언젠가 제랄드에 대해 말할 때 “그는 한 인간입니다.”라고 하였으며, 여성들에게 연설할 때 자신의 마음의 작용을 감출 수가 없었다.
베르나르도의 시대에 일반적인 현상이었던 수도생활에 대한 자발적 포기에 대한 문제는 별도로 하고, 그는 친구들에게 성소에 관해 쓴 편지를 보내면서 수도생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도록 오라고 초대장을 보낸다. 그의 잦은 부재 기간 중에, 그는 자신의 수도승들에게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편지를 썼다. 그들에게 영적 지도를 보내고, 헤어짐은 그에게 고통스러우나 곧 그들을 다시 보기를 원한다고 썼다. 용서를 청함으로써 큰 온유함을 드러내는 서간들도 있다. 그는 자비심이 없는 장상들의 문제에 개입하며 태만한 수도승들을 불쌍히 여겨, 수도원을 떠났으나 이제는 회개하고 있는 이를 다시 환영하도록 촉구하였다. 가족의 죽음 때문에 혹은 수도원에 들어간 아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보내는 편지들도 있다. 베르나르도는 의견 차를 좁히기를 시도하거나 적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잊게 하기 위한 화해 조정의 편지도 썼다. 마지막으로, 순수한 우정의 편지들도 있는데, 그 유일한 목적은 받는 이에게 그가 느끼는 애정과 감사를 표현하고 기쁨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글들 안에서, 성 베르나르도는 자신의 영혼의 대해 심지어는 몸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육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아들 이들을 이 사실을 이해하기를 원하였다.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엑스타시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안에서 우리와 일치하시는 하느님과 동떨어진 분이 아니다. 그분은 모든 이들 안에 현존하시며 그들의 구원을 원하시는데,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우리 동료들 안에서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이웃을 위해 효과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최소한 그분의 행복과 잘 되어감을 바라고 있다고 그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의 관심을 드러내주는 베르나르도의 연민 어린 편지들을 몇 가지 선택하였다. 만약 복음과 부합하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연민일 것이다. 애덕, 겸손 그리고 그리스도인을 활성화하는 연민에 대한 그의 묘사로부터 긴 발췌로 끝을 맺는 것 또한 이 이유 때문이다. 서간 42에서 그가 어느 주교를 위해 쓴 것은 모든 이들을 위해 그리고 언제나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이 글들은 베르나르도의 실천적 신비주의의 모범들이다. 이것들은 또한 자신, 타인, 하느님에 대한 그의 정확한 지식과 합당한 사랑을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예를 들어 쓴 편지 안에서, 그는 다른 곳에서 신학적 방식으로 가르친 것이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에 이러한 메시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필요 없는 일이다. 성 베르나르도 시대 이래로 그것은 인정되고 전수되어왔는데, 그의 작품들의 필사본과 출판 량의 엄청남은 문학 역사에 있어 희귀한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다른 전통에서도 환영받았다. 루터파 안에 성 베르나르도 연구에 대한 전체 시리즈와 그의 작품 번역본들이 있다. 루터 자신이 베르나르도를 읽고 인용하고 찬양하였다. 죄의 법과 성령의 법 사이에 있는 갈등하는 인간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작품을 쓴 중세 작가들도 그에게 매료되었다. 칼빈 역시 그를 높이 평가했으며, 오늘날에도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이 계속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의 경험적, 존재론적-심지어 현상학적- 특징은 성 베르나르도를 많은 현대 사상가들 그리고 그들의 영향 아래 있는 이들과 가깝게 해준다. 동시에 그의 작품들은 성서 안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우리를 원천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며, 원천 그 자체,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성에로 되돌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