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 trappkorea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1년 1월의 말씀

는 내 연인의 것, 내 연인은 나의 것”(아가 6,3). 이 놀라운 교환 체험의 처음을 기억하시나요? 어린 시절, 엄마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다가 요술에 걸린 듯, 신비에 사로잡힌 듯 “엄마! 엄마! 엄마 눈 안에 내가 있어요!”라며 환성을 터뜨린 때가 있었지요. 그 경이로움을 꺼내어 새로운 듯 만지니, 맑은 새벽 하늘이 쫘악 찢기면서 별들이 후두둑 쏟아지는 그림이 겹쳐집니다. 그날에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12월의 말씀

아가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고통스럽고 비참한 고백은 나의 비참함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루에 한 끼 식사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독거 노인, 혼자서는 외출은 물론 일상 생활을 못하는 장애인, 교통비를 지원받아야만 구직활동을 할 수 있는 청년실업자들, 이들은 타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문서로 고백, 증명해야 하는 이중의 비참을 겪는 사회적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11월의 말씀

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내 임은 내 가슴에 간직한 몰약 주머니”(아가 1,13 최민순 역)라고 신부(新婦)는 말합니다. 몰약은 아리고 쓰린 아픔과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신부가 “몰약 주머니가 나의 연인”이라고 말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아픔, 고통, 환난, 죽음이 결코 쉽고 가벼운 것이 아니지만, 신랑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볍게 여겨지고, 죽음처럼 강한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10월의 말씀

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연중 제30주일 본기도). 이 기도 안에서 마르코가 전하는 “어떤 사람”(마르 10,17-22)을 만납니다. 그는 이제 막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신 다음 예정된 길을 떠나시려는 예수님께 달려옵니다. 주님을 대면할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세라 “길 안으로” 들어서며 “무릎을 꿇고”, “다급하게 조르듯이”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9월의 말씀

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시 121). 재난과 재앙, 그 고통 앞에서 다시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릅니다. 당신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마태 5,45) 참으로 자비로운 분이심을 압니다. 당신의 완벽한 공평! 불바다, 물폭탄, 코로나 팬데믹은 악인과 선인을 골라서 덮치지 않는군요. 하지만 철저한 불공평이십니다. 이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8월의 말씀

느님 얼굴을 찾는 이들의 대명사격인(시편 24,6) 야곱이 어디서 어떻게 그분을 만났는지 익히 알고 있습니다(창세 28,10-22 : 32,23-33). “모태에서 제 형을 속이고 어른이 되어서는 하느님과 겨룬”(호세 12,4) 야곱이 하느님을 처음 만난 때는 “밤”이었습니다. 낯선 땅의 어둠도 두렵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과 앞날이 더 막막하고 무서웠을 것입니다. 심판받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압도됩니다. 놀라우신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7월의 말씀

직 어두울 때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요한 20,11-18). 그녀의 시공간은 한 처음 하느님 창조의 말씀을 기다리는 혼돈의 땅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열린 무덤이 있는 텅 빈 어둠의 정원, 그녀의 눈물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한 소리가 들립니다. “왜 우느냐?” “저의 주님을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뒤를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뒤”는 바로 “제자의 자리”입니다.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6월의 말씀

연은 무심한 듯, 도도한 듯! 머위꽃, 민들레, 제비꽃들이 길섶과 틈새마다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비 내리고 그치면 마치 출발선에서 신호를 듣고 달리는 마라토너들처럼 죽순은 순식간에 동시 다발로 땅을 뚫고 불쑥 올라오는 그 봄도 지났습니다. 봉쇄 울타리 안에서도 “접속”이 “접촉”의 자리를 대신한 낯섦의 현실을 직간접으로 만납니다. 어깨를 토닥이고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며 음식을 먹고,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5월의 말씀

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창세 1장). 어김없이 땅은 푸른 싹과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게 하고 온갖 새들이 풀숲과 나무들 사이로 포로롱 포로롱 훨훨 쑤우웅 날고, 그 날개짓 소리 또한 얼마나 고운지요. 머위잎 가장자리엔 밤새 빚은 이슬이 보석처럼 매달리고, 쇠뜨기는 빛의 이슬로 작은 초록탑이 되었네요. 낮추어 다가가면 거저 흘러넘치는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20년 4월의 말씀

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창세 1,2) 있었던 그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들고 완성하셨습니다. “생명의 숨”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면서 온갖 살아있는 피조물 속에 깃들어 빛이 생기고 땅에는 푸른 싹이 돋았습니다. 새롭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