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 trappkorea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7월의 말씀

 도원에서 저녁, 아침, 낮에 바치는 시간경 기도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저를 도우소서.”라고 시작합니다. “주님, 어서 빨리 오시어 저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짧은 기도는 때로는 한숨처럼 때로는 애원과 절규가 되어 작업장에서도 터져 나옵니다. “정해진 시간에 육체노동”을 하고, “자신의 손으로 노동함으로써 생활할 때 비로소 참다운 수도승이 되어”간다고 성 베네딕도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유기농 잼”을 만들어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6월의 말씀

 리는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 기뻐서, 슬퍼서, 억울하고 분해서, 부끄러워서 …… – 울게 됩니다. 울음 때문에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다가 울기도 합니다. 성 베네딕도는 규칙서에서 “지난 날의 자기 잘못을 눈물과 탄식으로 매일 기도 중에 하느님께 고백”하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보석을 감정하듯 눈물을 감정한다면 어떤 눈물 방울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울까요? 무슨 사연들이 있어 눈물을 흘리게 될지라도,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5월의 말씀

도원에 입회하는 이는 일정 기간의 초기 양성기가 끝나면 수도승 서원을 발함으로써 하느님께 봉헌됩니다. 그리고 “충실한 정주定住와 죽을 때까지 숭고한 순종을 통해서 참된 생활개선에 정진할 의무”(트라피스트 회헌)를 지닙니다. 너무 무거운 율법 조항으로 느껴지시나요? 이 의무의 짐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기도, 노동, 독서의 일상 안에서 자매들과 함께 지는 것입니다. 때론 무게가 어깨를 누르기도 합니다. 허나, 놀랍게도 결코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4월의 말씀

렐루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요한19,41)이 있었습니다. 배반과 죽음이 일어난 바로 그 정원에 “생명나무”가 나타났습니다. 닫혔던 동산이 열렸습니다. 도망치거나 숨거나 무관심한 우리를 생명과 사랑, 평화의 자리로 불러 모으십니다. 이웃도 외면한 채 앞만 보고 바삐 걷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몸을 낮추며 가까이 다가가서, 꿈틀거리며 땅을 뚫고 올라오는 온갖 살아있는 것들의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3월의 말씀

 었다가 다시 찾은 것이 무엇일 때, 친구와 이웃들을 불러 모아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할까요? 그림의 “어떤 여인은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어 그것을 찾고자 온 집안을 쓸고 뒤적이며 찾고” 있습니다. 혹 장롱의 옷 안에 있는지 탈탈 털어 보았고, 의자도 광주리도 엎어져 있습니다. 하나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듯 아홉 개의 나머지 동전은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2월의 말씀

리는 하늘도 땅도 주님의 것, 밤도 낮도 주님의 것, “땅이며 그 안에 가득 찬 것, 온 누리와 거기 있는 그 모든 것이 주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내 자신, 존재 자체도 분명 주님의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나의 주인께 돌려 드리는 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동안 모든 것이 내 것임을 주장하고, 더 많은 것이 내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8년 1월의 말씀

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고 좋은 말을 건네며 복을 빌어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쩌면 여전히 아프고, 힘들고, 버겁고, 먹먹하고, 억울하며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지라도 새해 아침은 우리 모두에게 전혀 새롭고 설레는 시간이 열리는 문이기를 바랍니다. 웃음과 울음, 가난과 부요, 상실과 연대 그 모든 것에서 희망이 꿈틀거리고 평화가 흐르며 주님 사랑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깊어지고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7년 12월의 말씀

탄이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각적 이미지는 전기불로 장식된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빨강 초록 원색의 온갖 장식품들일 것입니다. 기쁘고 흥겹고 연말파티와 모임들, 맛있는 음식이 떠오르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닙니다만, 성서 속 성탄, 예수님 탄생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추운겨울, 모닥불, 캄캄한 밤, 여관방조차 찾을 수 없어 만삭인 마리아를 데리고 찾은 마굿간,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7년 11월의 말씀

 속주의와 불신앙이 한창 맹위를 떨치던 19세기 프랑스에 루오 같은 종교화가가 태어난 것은 참 경이로운 일입니다. 실존주의 허무가 깊이 침잠하고 있던 한복판에 그의 섬광과 같은 종교체험이 깃든 작품들은 사람들에게도 경이로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는 참된 신적 체험이 깃들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슬프고 가혹한 모습을 루오만큼 명확하게 본 화가도 흔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에는 비관주의의 그림자조차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7년 10월의 말씀

 인을 하고 나면 당연히 잔치 자리가 이어집니다. 요즘에야 다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깔끔하게 헤어지지만 예전에는 며칠에 걸쳐 치르는 온마을 잔치였습니다. 거지들도 이때만은 배부르게 한상 받고 아이들 손에도 맛있는 것이 떨어지지 않는 며칠이 이어집니다. 혼인이 당사자들을 맺어주는 예식이라면 그 다음 이어지는 잔치는 결혼으로 맺어지는 부부가 속하는 집안, 마을 전체가 함께 나누는 하나됨의 자리입니다. 그 마을에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