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리 trappkorea

공동의 집 5

  유순하고 겁 많기 그지없는 아이 – 멧돼지   밭 담당을 하던 시기에 멧돼지에 대한 전의(戰意)에 불타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모든 농부가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고구마가 한창 커가던 시절, 수확시기를 생각하며 흐뭇함에 젖어 일하러 나간 밭에 전날 밤 멧돼지가 다녀가셨다. 고구마 밭은 엉망으로 뒤집혀 있었고 무성히 자란 잎사귀로 덮인 밭에서는 아무런 수확물도 나오지 않았다.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6년 3월의 말씀

상을 깡그리 뒤엎어주는 어떤 것을 만나는 것은 만나기 힘든 은총의 기회입니다. “어머니를 그리다”라는 책의 첫 장을 넘길 때 제 안에는 화가들이 그린 엄마와 아기의 따뜻하고 포근하며 밝은 화면이 깔려있었던가 봅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우선 그림들만 대충 대충 넘겨보았는데, 삼분의 일도 채 넘기기 전에 저의 예상은 마치 얇은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15C부터 20C에 걸쳐 40명의 […]

생명 덩어리

  생명 덩어리   아가야 너 생명 덩어리 조그만 몸에 다 담기지 않아 펄펄 넘쳐 소낙비로 우리에게 퍼붓는구나 생명 잔치 하늘 잔치 우리를 씻기는구나 먹이는구나

비밀스런 방

  비밀스런 방   작아지고 낮아짐은 비밀스런 방 신발끈 풀어드리기에도 합당치 않은 그런 분을 만나는 방 작아지고 낮아짐은 비밀스런 방 작아지고 낮아져 행복하니 진짜 나와 진짜 그분이 만나는 방

한해 첫날에

  한 해 첫날에   저의 생명으로 님은 찬미받으소서 저의 죽음으로 님은 찬미받으소서 생명과 죽음 내 손에 있지 않고 님의 손 안에 있으니 찬미받으소서 님의 손길 내 생명보다 나으니 저 평안하나이다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6년 2월의 말씀

년 6월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그림을 기억하시는지요? 거칠고 험한 산을 안개가 가득 덮어 신비와 두려움이 느껴지는 산 정상에 한 남자가 한 쪽 발을 올린 채 그 산보다 더 장엄한 자세로 서있는 모습의 그림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 그림의 자연은 아주 평범한 한국 농촌의 풍경입니다. 가을걷이마저 끝나 황량한 들판과 겨울강을 이렇듯 따뜻하게 김 호원 화백은 […]

공동의 집4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원전보유와 핵무기가 국가의 가장 큰 방위(防衛)와 에너지원이라고 믿는 우리 시대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을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이 되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와 국민의 생명위협, 그것도 한 세대에 끝나지 않는 지속적인 고통을 유발한다는 핵폭탄 선언과도 같은 경종을 울렸다. 역사상 가장 큰 원전사고로 불리는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11배 규모요, 세계에서 기술력이 가장 탁월하다고 […]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16년 1월의 말씀

  해 아침, 노란색이 묻어나는 그림 한 편 보냅니다. 추계대사도(雛鷄待飼圖). 병아리가 먹이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그림으로 12-3세기 송나라 화가 이적이라는 남자가 그린 것입니다. 남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 포근포근 폭닥폭닥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림을 먼 시절, 남자란 근엄한 존재이던 시절에, 남자가 그렸다는 것입니다. 어떤 전경 속 한 부분이 아니라 오늘날 데생처럼 달랑 병아리만 그린 동양화를 잘 보지 못했습니다. […]

빈자리 5

  빈자리 5   서로서로 함께 손잡아 모두 함께 손잡아 생긴 둥근 빈자리 우리들 중 누구를 위한 자리 아니네 우리 사이에 하느님 머무는 자리 서로 중심이 되겠노라 툭툭 불거져 나오는 곳에는 생겨날 수 없는 자리

빈자리 4

  빈자리 4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삶의 자리 살아가는 것은 아름다운 음악 하느님의 음악에 장단 맞추고 하느님의 노래에 화음 넣네